[이후경의 마음처방전] ‘묻지마 칼부림’이 소환한 조현병 극복하는 탁월한 처방 셋!
기사승인 2023.10.12 10:39:47
- 2023년 10월호 66p
【건강다이제스트 | 이후경(정신건강의학과 의사, 경영학 박사, LPJ마음건강의원 대표원장】
“하하하.” 짜증이 나서 미치겠는데, 앞에 있는 여자들이 재밌는 잡담이라도 하는지 깔깔 웃는다. ‘나를 보고 웃나?’
“어이쿠, 죄송합니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사람이 수많은 인파에 몰려 어깨를 친다. ‘일부러 그랬나?’
거슬리는 웃음소리 때문인지, 어깨를 친 사람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유는 이미 중요하지 않다. 작은 짜증이 화가 되고, 이걸 풀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머릿속을 맴돈다.
작은 욕설을 읊조리며 거리를 걸었다. 시선에 걸렸다. 내가 이길 수 있는 사람….
‘묻지마 칼부림’으로 사회가 흉흉하다. 묻지마 범인의 살해 동기는 사소하고 기괴하다. 범인 상당수는 사이코패스나 중증 정신질환자다. 절반이 치료 병력이 없다. 무한경쟁 사회에서 낙오하고 고립된 개인의 열등감과 복수심이 작동한다.
사회적 소외·빈곤·무관심에서 오는 분노도 원인이다. 범인은 공통으로 ‘지나친 피해의식’을 느낀다. 자신은 피해자이고 세상을 가해자로 생각해 가해자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한다.
중증 정신질환은 조현병이 대표적이다. 조현병은 기이한 집착이나 편집증적 사고를 보인다. 누군가 자신을 미행하고 감청하고 해치는 피해망상을 흔히 경험한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조현병은 정신병이다. 뇌 기능 장애로 인구 1%가 걸린다. 남자는 10대 후반, 여자는 20대 중·후반에 발병한다. 45세 이후는 드물다. 주증상은 환청·망상·사고 와해다.
환청은 공격적이고 외설적이다. 욕지거리·명령·속삭임으로 온다.
망상은 과대망상과 피해망상이 많다. 메시아 환상에 빠지고, 도청과 감시에 쫓긴다. TV에서 메시지를 받고, 내 생각이 방송된다.
사고 와해는 언어장애를 동반한다. 묻는 말에 엉뚱하게 답하고,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한다.
이러한 조현병은 조기 개입이 중요하다. ½은 정상인으로 살아가고, ⅓은 폐인이 된다.
조현병은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쳐 발병한다.
잠복기는 사춘기 문제와 겹쳐 알아채기 어렵다. 생활이 불규칙하고, 별난 신체 증상을 호소한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철학·종교에 심취한다.
활동기는 폭발하는 시기다. 망상세계에 빠지고, 감정이 굳어버린다. 적극적인 개입이 중요하다. 향정신병 약물로 90% 이상 치료된다.
잔류기는 아이같이 되거나 바보처럼 군다. 사회에서 위축되고, 일상생활이 망가진다.
조현병은 재발 방지가 중요하다. ½은 병의 인식이 없고, ⅓은 자살 시도를 한다. 재발이 거듭되면 기능이 저하된다.
조현병은 왜 생기나?
생물학적 원인이 압도적이다. 여러 이론이 있다. 쌍둥이 연구에서 한쪽이 병일 때 다른 쪽 발병률은 50%다. 청소년기에 정신병 유전자가 깨어난다. 이때 충동 제어를 담당하는 전전두엽이 제대로 성숙하지 못한다. 도파민과 세로토닌의 불균형도 특징적이다.
심리적 원인은 3세 이전의 트라우마다. 기억에는 없지만 당시 충격이 반복된다. 평생 아이의 운명을 결정한다. 머리로는 몰라도 느낌으로 기억하고, 말로는 못해도 몸으로 표현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병을 앓게 된다.
정신병은 정신의 무정부 상태다. 정신은 본능·자아·초자아로 구성된다. 본능은 국민, 자아는 정부, 초자아는 사법부에 해당한다. 정신병은 자아가 본능·초자아와 현실을 조정하는 데 완전히 실패한 상태다. 자아가 약해져 충동·욕망이 마구 터져 나온다.
정신병은 정신의 암이다. 정신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구성된다. 정신병은 의식이 무의식에 잠식당해 혼란스러운 상태다. 스트레스가 심하면 무의식의 정신병 유전자가 깨어난다. 괴물이 튀어나와 온전한 정신을 해친다. 현실이 무시되고 환각에 압도된다.
정신병은 신경증과 다르다. 신경증은 나를 지키려고 싸우는 상태고, 정신병은 싸우기를 포기한 상태다. 정신분석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신경증적이다. 라캉에 의하면 인간 모두가 비정상적이다. 95%가 신경증, 4%가 도착증, 1%가 정신병이다.
정신병자는 부권(父權) 상실로 억압에 실패한다. 아버지는 사회의 상징이다. 사회화되지 못하고 아이에 머문다. 정신병자는 충동에 지배당한다. 충동은 쾌락을 동반한다. 부르는 충동은 환청으로, 응시하는 충동은 환시로, 죽음 충동은 자살로 이어진다.
정신병자는 확신에 잘 빠진다. 의혹 상태를 못 견딘다. 확신은 평안을 주지만, 광신과 망상으로 나타난다.
조현병을 극복하는 탁월한 처방
첫째, 규칙을 생활화하자.
정신병은 혼돈의 병이다. 규칙은 무질서를 질서로 바꾼다. 같은 시간에 자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먹자. 정신병은 생활습관을 바꾸면 좋아지는 정신의 암이다. 한 번의 예외도 허용하지 말자. 정신병은 한 번의 실수에도 폭발한다. 정신병은 완치가 어려워 관해(증상이 감소한 상태)라 한다. 철저히 재발을 막으면 완치에 가까워진다. 잠은 정신병 치료에 가장 중요하다. 무의식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정신과에 가면 잠 잘 자는 약을 준다. 잠을 푹 자야 병이 좋아지고 재발도 없다.
둘째, 일념(一念)으로 살아가자.
정신병은 길을 잃은 병이다. 일념은 한 방향만 보고 사는 것이다. 어느 하나에 푹 빠지자. 공부·운동·종교에 미치자. 일 년 내내 여행만 다녀도 좋다. 나 하나만 생각하고 살자. 정신병은 가족을 염려하고 국가를 걱정해서 생긴 병이다. 버는 돈은 나를 위해 다 쓰자. 작은 스트레스라도 어떻게든 풀어야 재발을 막는다. 환청은 없애려 하면 심해지고, 내버려 두면 시들하다. 망상은 제거하려 하면 심해지고, 그러려니 하면 물러진다. 충동은 억누르려 하면 심해지고, 그대로 두면 흩어진다.
셋째, 이해를 넓혀가자.
정신병은 공포의 병이다. 이해하면 사랑하게 된다. 머리로 이해하려 하지 말자. 얽힌 사고는 사고로 풀지 못한다. 정신병은 사회에 입학도 못 한 상태다. 평생 좋은 후견인이 필요하다. 배움이 일어나면 하루하루 달라진다. 가슴으로 이해하자. 뭉친 감정이 표현되면 꼬인 사고가 풀린다. 정신병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에서 온다. 평생 좋은 상담자가 필요하다. 정화가 일어나면 하루하루 달라진다. 몸으로 이해하자. 작은 경험이 쌓여 높은 성벽이 된다. 정신병은 세상살이에 무지한 데서 온다. 평생 좋은 주치의가 필요하다. 철저한 약물 관리가 필요하다. 완치된 듯해도 소량은 유지해야 한다.
이후경 박사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경영학 박사, LPJ마음건강의원 대표원장, 연세대 의과대학과 동대학원을 거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연세대 경영대학원과 중앙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2014년부터 2020년까지 7년 동안 경제주간지 『중앙 이코노미스트』 칼럼리스트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사례로 풀어본 한국인의 정신건강>, <아프다 너무 아프다>, <임상집단정신치료>, <와이 앰 아이>, <힐링 스트레스>, <관계 방정식>, <변화의 신>, <선택의 함정> 등 10여 권의 책을 저술했다.
이후경 박사 kunkang198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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