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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탁·신뢰·역량 발휘까지…세종의 `인재 파이프라인`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 특별기획

  • 안갑성 기자
  • 입력 : 2018.07.27 04:04:01
한국경영硏·매일경제 세종대왕 리더십 세미나 ⑥
 
472123 기사의 0번째 이미지사진설명 지난달 매일경제 본사에서 열린 한국경영연구원 제6회 세종리더십세미나에서 참가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옛날 한 바이킹이 도적질을 하다 신기한 물건을 하나 발견했다. 꼭지를 돌리면 물이 쏟아져 내리는 `황금빛 수도꼭지`였다. 그는 이 수도꼭지를 집으로 가져가서 부인에게 의기양양하게 자랑했다. 그는 꼭지를 틀었지만 `황금빛 수도꼭지`에서는 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유럽의 오래된 한 동화에서 나오는 이 이야기를 윤정구 이화여대 경영대 교수는 지난 4월 출간한 저서 `황금 수도꼭지`에서 현재 비즈니스에도 적용되는 교훈으로 탈바꿈시켰다. 조직행동과 집단동학 분야 세계적 석학인 윤 교수는 긴 불황과 경계가 해체되는 초연결사회에서도 지속적으로 성과를 내는 기업들은 `경영목적`에 도달하는 파이프라인을 제대로 설치하고, 이를 혁신한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슈퍼보스 : 뛰어난 경영자가 인재의 흐름을 관리하는 방법`을 저술한 시드니 핑켈스타인 다트머스대 경영학 교수도 "밀레니얼 세대 인재를 붙잡으려는 기업은 직원이 머무르는 기간을 최대한 늘리는 대신 직원에게 성장 기회와 영향력을 최대화하면 조직을 장기에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인재 파이프라인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차원에서 지금껏 사용된 `전략경영`은 더 이상 구성원 간 생존경쟁을 위해 쓰이면 안 된다. 윤 교수는 목적을 중심으로 비즈니스 모델과 업이 통합돼서 수행되고, 구성원들이 회사 역사를 쓰는 작가가 된다면 회사를 `전문가들의 즐거운 놀이터`로 만들 수 있다고 덧붙인다. 구성원들은 회사에서 마음껏 자신의 일을 하며 전문성을 연마하는 성장을 체험한다.

오늘날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바이킹처럼 황금 수도꼭지만 돌리면 될 것이란 착각을 하고 있다. 수도꼭지만 황금으로 도금한 뒤 이를 보물처럼 아끼는 `황금 수도꼭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기업 리더들은 수도꼭지만 돌리면 핵심인재들이 쏟아져 들어오리라 생각하지만, 정작 인재들이 유입되는 원천과 이에 도달하는 파이프라인이 준비되지 않은 회사는 인재를 얻을 수 없다. 다양성을 증대하려고 해도 임원으로 승진시킬 여성 인재가 없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이런 기업 대부분은 여성 인재를 육성하는 파이프라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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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원 간 신뢰가 중요한 건 알지만 평소에는 무관심하다. 정작 문제가 발생하면 회식이나 워크숍이란 자리를 빌려 "서로 믿고 신뢰하며 일하자"고 외친다. 구성원들이 일에 대한 흥미를 잃고 몰입도가 떨어지면 `일하기 좋은 회사 만들기` 프로그램을 황급히 도입한다. 회사를 놀이터로 만든다고 하지만 결국 직원들을 어린애처럼 취급하고 끝난다.

윤 교수는 회사의 존재 이유, 성과라는 목적에 파이프라인을 묻어두면 변화와 혁신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결과라고 지적한다. 여전히 많은 회사들이 수도꼭지 틀기 수준의 단기적 성과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윤 교수는 시어스 백화점 사례를 제시한다.

1990년대 초 미국 시어스 백화점은 경쟁사의 부상으로 매출이 급락했다. 당시 에드워드 브레넌(Edward Brennan) 회장은 직원들에게 매출과 이익을 올릴 방안을 요구하며 차량정비 부문인 `시어스 타이어 앤드 오토 센터` 직원들의 평가·보상 방식을 바꿨다. 기본급을 없앤 대신 자동차 수리 대수와 매출액을 기반으로 평가 시스템을 마련하고 차별적인 보상을 실시했다. 위기의식을 고취한다며 매출 기준을 못 넘기면 해고당할 수도 있다고 위협했다.

이에 따라 직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매출을 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수리 품질을 높이기 보다 과잉 서비스로 매출을 올렸다. 특히 자동차를 잘 모르는 여성 고객을 상대로 수리비를 부풀려 청구했다. 결국 시어스 백화점은 미국에서 최소 100건이 넘는 소송에 직면하게 됐고 소송비용으로 인해 대대적 구조조정에 들어간 뒤 2003년 K마트에 인수·합병된다.

지속적인 성과를 내는 회사와 인재는 자신만의 목적에 도달하는 파이프라인이 잘 갖춰져 있다. 목적지에 파이프라인을 묻고, 파이프라인을 혁신하다 보면 지속적인 성과가 따라온다. 이는 인재육성, 인적자원(HR) 관리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인재개발을 잘하기로 유명한 제너럴일렉트릭(GE)은 `리더십 파이프라인` 모델을 통해 승진한 직원들에게 향후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미리 알려주고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직원들의 자발적 추종이 없으면 감시비용이 발생한다.

한국인 대부분이 리더의 롤모델이자 준거(레퍼런스)로 삼는 인물은 세종대왕이다. 세종대왕 재위기간은 황희, 맹사성 같은 명재상부터 장영실 같은 천민 출신 과학인재까지 분야를 넘나들며 인재가 넘쳐나던 시기 중 하나다. 세종이 조선에서 구축한 인재 파이프라인은 어떤 요소를 갖추고 있었을까.

매일경제는 올해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을 맞아 한국경영연구원과 공동으로 한국 고유 리더십 롤모델을 찾기 위한 `변혁기 혁신 전략 - 세종대왕에게 길을 묻다` 세미나를 주최했다. 지난 6월 열린 `제6회 세종리더십 세미나`에서는 세종식 인재경영을 중심으로 기업이 훌륭한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방안을 둘러싸고 주제발표와 패널토론이 진행됐다. 이번 세미나는 재단법인 장은공익재단과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가 후원 기관·단체로 참여했다. 주제발표는 송영수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와 이익주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가 각각 세종 인재경영 특징과 그 한계에 관해 발제자로 나섰다. 패널토론에는 주제발표자를 포함해 조남신 한국경영연구원장(한국외대 교수), 김용준 한국경영연구원 부원장(성균관대 교수), 손욱 사단법인 행복나눔125 회장, 오세천 행복나눔경영컨설팅 대표, 권혜진 세종이노베이션 대표 등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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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주제발표에 나선 송 교수는 "세종 인재경영은 오늘날 인재 경영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며 "인재 파이프라인 모델에 빗대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기업들은 각자 실천 모델을 수립해 인재확보에 나서고 있다. 인재 파이프라인 모델은 기업마다 다르지만 크게 △잠재력 갖춘 인재 선발 △역량 개발 △경력개발 △후계자 양성으로 구분된다.

세종은 크게 `간택` `평의` `중론` 등 3단계로 구성된 인사검증 시스템으로 인재를 선발했다. 세종 초기 10여 년간 이조판서를 맡은 허조는 △정가간택(精加揀擇) △경여평론(更與評論) △중의부동(衆意孚同) 등을 거쳐 인재를 선발했다. 우선 인사 담당 관리가 후보자 경력과 자질, 부패 혐의, 가족관계를 조사하는 게 정가간택이다. 이후 이조 관원들의 평가를 함께 모으는 경여평론, 오늘날 인사청문회에 해당하는 중의부동을 실시했다. 특히 경여평론과 중의부동 단계에서 세종대에 다수 의견을 수렴해 인재를 선발할 수 있었다.

송 교수는 세종의 소통 방식도 좋은 인재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평가했다. 세종은 전제군주답지 않게 신하들에게 많은 직언을 구했으며, 어떤 중대 사안을 논의할 때 의견이 달라도 최종 합의를 잘 유도해냈다. 세종은 반대 의견마저도 잘 경청해서 심사숙고했으며, 좋은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신뢰와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세종은 인재경영을 펼치며 덕망과 재능을 중심으로 인재를 발탁하고, 인재를 자기 몸처럼 소중히 아꼈다. 천민 신분이었던 장영실을 종3품 대호군까지 승진시켰고, 천문에 뛰어났던 이순지를 동부승지로 발탁한 게 세종이었다.

세종은 리더로서 개별적인 배려를 신하들에게 베푸는 점도 잊지 않았다. 조선 초기 서거정이 쓴 `필원잡기`에는 유명한 신숙주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집현전 선비들은 번갈아 숙직하였는데 (중략) 신숙주가 촛불을 켜 놓고 글을 읽고 있었다. 닭이 울자 비로소 잠자리에 들었다고 내시가 아뢰니, 임금이 이를 가상하게 여겨 옷을 벗어 그가 잠들 때를 기다려 덮어주게 했다."

세종이 본격적으로 육성한 집현전도 세종식 인재경영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기관이다. 세종은 인재가 어느 한 지위에 적합하면 해당 지위에서 오랫동안 일하게 해서 성장하고 전문성을 쌓을 기회를 제공했다. 황희나 맹사성 같은 정승들은 각각 재임기간이 24년과 8년에 달해 국정을 안정화시키기 유리했다. 예조, 호조, 병조같이 전문성이 필요한 부처의 판서들도 평균 6.8년간 재직해 맡은 임무를 완수하게 했다. 특히 집현전은 거의 대부분 10년 이상 전문 분야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연구년 제도인 `사가독서제` 등을 활용해 폭넓게 지원했다.

■ 주최 : 한국경영연구원 매일경제신문사
■ 후원 : 재단법인장은공익재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

[안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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