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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30년간 `기전체 고려사` 완성…역사서 교훈 찾은 `에디터`

최초입력 2018.05.11 04:04:01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 특별기획

한국경영硏·매일경제 세종대왕리더십 세미나 ⑤ 소술선지(紹述先志)의 리더십

기사의 1번째 이미지한국경영연구원 제5회 세종리더십세미나. [한주형 기자]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 군인 가운데 농촌 출신 남성이 도시 출신 남성보다 더 나은 정신 건강 상태를 보였다. 1940년대 미국 농촌 남성은 도시 남성에 비해 육체 노동에 익숙하고 평균적으로 더 열악한 삶을 살았다. 자연스럽게 그들은 전쟁에 적응하는 데도 상대적으로 용이했다. 이 같은 설명은 참일까 거짓일까.

당신의 상식, 과연 진실일까

20세기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폴 라자스펠드(Paul Lazarsfeld)는 2차 세계대전 직후 60만명이 넘는 참전 군인을 상대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300개 이상의 연구를 종합해 '미국 군인 설명 보고서(The American Soldier-An Expository Review)'를 내고 여섯 가지 시사점을 발표했다.

 

직관적으로는 '농촌 출신 병사가 도시 출신에 비해 정신 건강이 더 좋았다'는 설명에 납득이 된다. 그러나 라자스펠드는 6개 연구 결과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이 진실이 아니라는 점을 밝혔다. 참전 병사 가운데 비교적 정신적으로 건강했던 병사들은 시골이 아닌 도시 출신이었다. 도시 출신 병사들은 복잡한 명령 체계와 엄격한 복장 규정, 에티켓 등을 준수해야 하는 기업 조직 내 복잡한 상황에 더 익숙했다.
많은 독자들은 거짓인 명제에 대해서도 진실을 알기 전까진 매우 쉽게 진실로 받아들인다. 결국 핵심은 상식 그 자체다. 상식은 일상적인 상황에서 벌어지는 복잡성을 처리할 때 비교적 정교하게 작동한다. 직장에서 하는 행동거지와 자녀 앞에서 하는 행동이 다를 것이다.

반면 기업, 시장, 국가, 문화 등에 관한 상황은 다른 종류의 복잡성을 띤다. 대규모 사회 문제를 다룰 때에는 장기간에 걸쳐 다양한 맥락에서 개인 행동을 예견하거나 관리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라자스펠드가 보여 주려 했던 바는 상식은 특정 행동을 합리화하는 동시에 그와 정반대되는 것도 합리화하는 예측 오류를 저지를 수 있다는 점이다. 상식은 우리가 복잡한 일상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지만 역설적으로 진실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 결국 상식에 의존해 거짓을 진실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면 모든 가능성을 원점에서 검토하고 최대한 폭넓게 다른 종류의 견해를 수용해야 한다.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 실리콘밸리의 혁신적인 기술 기업들은 조직원들 스스로 기업가 정신을 갖추고 창업가 같은 자세로 일하도록 주문한다. 그러나 한정된 시간과 비용으로 인해 모두가 창업을 실제로 경험하고, 자신만의 사업체를 이끌어 보기는 어렵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 사례연구의 대명사

사례연구(Case Study)는 고급 인재를 양성하는 세계 유수 MBA(경영학 석사) 과정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케이스 스터디는 과거 기업이 실제로 겪었던 주요 사건과 데이터, 핵심 의사 결정 내용들을 제시한 뒤 사후에 토론 형태로 분석해 보는 학습 방법이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HBS)이 1912년 처음 도입하고 1924년 주된 교육 방식으로 채택한 이래 이 학습 방법은 큰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HBS에 지원한 인원은 총 9759명이고, HBS 매출은 7억6100만달러(약 8510억원)를 기록했다.
HBS MBA 과정에서 학생들은 2년간 평균 500개 기업 사례를 배운다. 이를 통해 불확실성하에서도 최선의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역량을 키우게 된다.

MBA와 케이스 스터디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고 최근까지도 실리콘밸리 창업 신화가 속출하면서 인기가 떨어졌다. 이에 최근에는 전통적인 케이스 스터디에 '필드 스터디'를 가미해 '지식'에서 '실천'으로, '실천'에서 '가치관'으로 학습 방법이 진화하고 있다. 야마자키 마유카 HBS 일본연구소 어시스턴트 디렉터는 저서 '하버드 실천 수업'에서 진정한 리더가 갖춰야 할 필수조건으로 지식(Knowing)·실천(Doing)·가치관(Being)을 강조했다.

 

기사의 2번째 이미지

이론에서 사례 연구로…세종의 소술선지

소술선지(紹述先志). 선인들 뜻을 이어 이룬다는 뜻이다. 세종이 북방 영토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신하들에게 전한 말이다(세종 15년 11월 21일). 세종은 역사적으로 태종이 닦아 놓은 정치 기반 위에서 통치를 시작할 수 있었다. 훈민정음 창제·반포, 4군6진 개척 등 세종이 이룬 수많은 업적은 신생 왕조였던 조선이 500년을 존속할 수 있었던 토대를 제공했다.

그런데 세종 리더십의 진정한 비결은 이와 같은 업적이 아니라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창업주 겸 최고경영자(CEO)처럼 기존에 존재하는 것들을 결합해 동시대인 요구에 맞는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낸 '에디터적 사고'에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지난 9일 열린 제5회 '변혁기 혁신전략-세종대왕에게 길을 묻다' 세미나에서 발제자로 나선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은 "세종은 스티브 잡스와 같은 '에디터적 사고'를 기반으로 '조선다운 것'을 창조하는 데 성공한 군주"라며 "세종의 가장 훌륭한 업적은 훈민정음도 북방 개척도 아닌 기전체 형식의 고려사를 편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세미나는 한국 고유의 리더십 벤치마크를 찾기 위해 매일경제가 한국경영연구원과 공동 주최하는 것으로 재단법인 장은공익재단과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가 후원 기관·단체로 참여했다. 발제자 이한우 교장은 25년간 중앙일보 뉴스위크, 문화일보, 조선일보 등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영어·독일어·한문 번역서 20여 권 등을 출간한 서양철학자이자 번역가다. 특히 2001년부터 7년간 조선왕조실록을 읽은 일을 계기로 저술한 '군주열전' 시리즈를 통해 조선시대 역사책 저자로 주목을 받았다. 2012년부터 '논어로 논어를 풀다'를 시작으로 사서삼경(四書三經) 시리즈를 펴냈다. 최근에는 송(宋)나라 학자 진덕수(眞德秀)가 펴낸 동양 제왕학의 바이블인 '대학연의'를 전공자가 아닌 언론인 출신으로 최초로 번역해 내기도 했다.

세종, 고려사 에디터

세종이 즉위한 1418년은 조선 건국 26년째에 불과했다. 이한우 교장은 세종이 위대한 까닭을 논하기에 앞서 "세종이 고려 사람인지 조선 사람이었는지부터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도 태조 이성계, 태종 이방원처럼 고려 사람이었다. 이 교장은 "여전히 6·25전쟁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대한민국 사람들이 논하는 것처럼 25년이라는 기간은 (앞선) 역사에서 벗어나기에 짧은 시간"이라며 "조선 사람들이 '고려인'을 탈피한 일은 성종대 이후 일"이라고 말했다. 이는 다시 말해 세종이야말로 '고려다운 것'을 벗어 던지고 비로소 '조선다운 것'을 만들기 시작한 군주였고 성종이 집권한 시기가 돼야 그 결실이 나오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조선 왕조가 500년을 존속할 수 있었던 비결은 통치행위 하나하나마다 역사적 맥락(케이스)에 비춰 본 덕"이라는 견해도 덧붙였다. 조선은 개국하자마자 고려사 편찬을 시작했고, 세종은 정도전이 '고려필망론'에 입각해 편찬한 내용을 사실 자체에 입각해 쓰기 위해 재위 30여 년간 기전체 양식 고려사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세종이 고려사를 편찬한 덕에 조선은 세 가지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고려스러운 것'을 규정함으로써 '조선스러운 것'을 창조하고 고려로 회귀하려는 내부 움직임을 차단할 수 있었다. 또 기전체 양식을 채택해 고려사를 명나라 역사서술 방식과 나란히 세워 세계적인 표준을 따르면서도 정도전이 임의로 바꿨던 고려 시절 '황제국 용어'를 그대로 서술하도록 지시했다.

중용·성리학·경사체용

이 교장은 '에디터 세종'에게서 배울 3가지 지혜를 소개했다. 우선 이미 존재하던 모든 것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고 원점에서 미래지향적인 방도를 추구하는 점이다. 그는 저서에서도 "세종은 경서를 읽어도 그 원리에 해당되는 중국 역사 속 사례를 점검한 뒤 여러 형편에 따라 다양하게 조선의 현실에 적용될 수 있다는 점(경사체용·經史體用)을 잘 알고 있었다"고 평했다.

둘째는 '중용(中庸)'의 자세를 견지하라는 점이다. 이는 사안의 본질에 적중(中)하고, 이를 유지할 수 있는 장기적인 해법을 찾아내는 일(庸)로 풀이된다. 훈민정음도 유교 가치를 민간에 전파하기 위해 단기적인 법과 제도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대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창제했다는 것이다.

끝으로 기존 태종이 '사대' 정책을 취하던 명나라와 관계를 화약의 주원료인 염초를 안정적으로 확보해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지성사대'를 실천한 점이다. 북방을 개척하면서도 사안에 따라 경중을 판단하는 선후본말(先後本末)을 놓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올 초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환상의 나라' 시리즈 제1권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를 출간하고 "조선의 임금이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에게까지 한국사 제1의 성군이면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이 전 교수는 세종 때 이뤄진 △노비제도 심화 △기생제 토대 마련 △사대주의 국가체제 정비 등을 지적하며 "세종은 철저하게 양반에게만 '해동의 요순'이었다"고 비판했다. 훈민정음에 대해서도 조선이 '소중화'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행한 정책이었다고 문제 의식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이 교장은 "노비제 심화의 원인을 제공한 '노비종모법' 등은 당시 시대 상황에서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던 일"이라며 "세종을 근대적 잣대로 불러들이는 시각에 절대 반대하며 그 이후 논의는 역사를 지나치게 현대적 필요에 의해 끌어당긴 것"이라고 재반박했다.

이 교장은 이 전 교수가 과거 논박했던 '자본주의 맹아론' '영·정조 르네상스' 등을 강조하는 역사관에 대해서도 저서를 통해 '공허하다'고 역시 비판한 바 있다. 그는 "조선은 조선의 역사로 볼 일"이라고 강조했다.

※ 주최 : 한국경영연구원 / 매일경제신문사
※ 후원 : 재단법인장은공익재단 /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

[안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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