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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포장社 '네패스' 이병구 회장… 합창·감사 편지로 성과
 

아침 일찍 합창이 울려 퍼졌다. 지난달 19일 오전 8시 20분 충북 청주시 오창읍 '네패스' 2공장. 반도체 특수포장 회사인 이곳 임직원은 국내 사업장 7곳 모두에서 이렇게 하루를 연다. 강당에 모여 40분 동안 노래 몇 곡을 함께 부르고 서로에게 감사 편지를 쓴다.

이들은 먼저 스마트폰을 꺼내 '마법노트'라 불리는 앱에 각자 뭐라고 썼다. 직장 동료인 당신이 이렇게 저렇게 도와줘 고맙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합창이 시작됐다. 첫 곡은 "괜찮아 힘을 내봐/ 너는 혼자가 아니야/ 언제나 너의 곁에/ 내가 함께 있을 거야~"로 흘러가는 '힘내쏭'. 공장 안에 활기가 돌았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노래만큼 좋은 세상' 등이 이어졌다.
 
 
이병구(71) 네패스 회장은 지난 8월 한국경영학회가 선정하는 강소(强小)기업가상을 받았다. 그가 개척한 '음악 경영' '감사(感謝) 경영'에 대한 평가다. 네패스 임직원은 마주칠 때마다 '수퍼스타(Superstar)!'라고 인사했다. 대당 50억원에 달하는 반도체 장비에 어느 날 '감사합니다. 가동률 100%'라는 스티커를 붙였더니 고장 건수가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감사와 노래가 심장이 없는 기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다니. 숨겨진 비밀이 궁금했다.
 
경영에 음악을 접목한 이병구 네패스 회장이 충북 청주 네패스 2공장 강당에서
경영에 음악을 접목한 이병구 네패스 회장이 충북 청주 네패스 2공장 강당에서 ‘유 레이즈 미 업’을 노래하고 있다. 그는 “저희 임직원은 매일 아침 40분씩 합창하고 감사 편지 쓰면서 일과를 시작한다”며 “시간 낭비가 아니라 마음을 모으고 성과를 높여주는 투자”라고 했다. 작은 사진은 네패스 음악 교실 풍경. /청주=신현종 기자

일과의 시작은 '음악 샤워'

―'감사 경영'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기업 문화를 증강시켜 성과를 냅니다. 가치관과 생활양식이 중요해요. 나는 누구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회사와는 어떤 관계인지 가치관이 정립돼 있어야 구성원이 서로 이해하며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몸에 스며들려면 생활양식이 필요한데 그게 '감사 경영'이지요. 매사에 서로 '감사합니다'라고 자꾸 말하면 관계가 좋아지고 소통이 잘돼 결국 목표를 초과 달성하게 됩니다."

―대학에선 뭘 전공하셨나요.

"자원공학을 공부하다 영어영문학으로 전과했습니다. LG반도체에 입사해 생산기술센터장을 지내고 1991년 창업했어요. 어느 날 인사 관련 회의를 하는데 '사장님, 지난번에 그렇게 하시더니 지금은 왜 이렇게 하십니까' 누가 문제를 제기했지요. '대기업이 그렇게 한단다'라고 넘겼는데 그 말이 종일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렸죠."

―기준이 고무줄이었기 때문인가요?

"경영 이념, 사훈 같은 게 왜 필요한지 깨달았지요. 그 일을 계기로 나만의 경영법을 궁리하고 적용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목표만 두고 일할 경우 갈등과 부작용이 생겨요. 달성해도 기쁨을 느끼는 사람은 몇 안 되고 다수는 허탈해집니다. 또 다른 목표가 주어질 뿐이죠. 회사에 몸담은 시간을 보람 있고 가치 있게 보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침 음악교실은 언제 시작했나요.

"2003년입니다. 당시 출근 시각이 오전 8시 반이었는데 합창을 할 테니 8시까지 나오라고 했습니다. 처음엔 좋아들 했는데 6개월쯤 지나자 불평이 터져 나왔어요. '왜 매일 하냐' '왜 밝고 힘찬 노래만 부르냐'…. 협의를 했지요. '좋다. 그럼 직원이 10분만 희생하면 회사가 30분을 보태겠다.' 모두 동의해서 8시 20분부터 40분 동안 네패스의 일과로 자리 잡았습니다."

―선곡 문제는요?

"합창은 음악이 목적이 아니라 성과 창출과 지속 성장을 위해서입니다. 아침에 일터에 활기를 불어넣어야 하는데 밤에 노래방에서나 하는 울적한 노래를 부를 순 없잖아요. 가사가 긍정적이고 곡이 경쾌해야 한다는 두 기준으로 신청을 받았습니다. 원하지 않는다면 음악교실에 불참해도 되고요. 단, 그럴 경우 8시 30분부터 일하라고 했어요. 대부분 참석합니다(웃음)."

―음악이 어떤 효과를 낼까요.

"기분이 처질 때 가장 빨리 붙잡아 일으켜주는 게 음악입니다. 아침에 출근해 컴퓨터 앞에 앉아도 30분은 집중이 안 돼요. 가정사나 그날 출근까지 있었던 일이 머릿속에서 잘 안 없어지니까요. 합창은 '아, 이제 회사에 왔구나' 일러주는 일종의 '샤워'입니다."

―임원에게도 도움이 되나요?

"물론이죠. 기분이 뒤숭숭한 상태에서 결정을 하면 오판할 가능성이 높아요. 우리 회사는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도 다 같이 노래를 부릅니다."

'감사합니다' 붙이니 고장률 뚝

네패스는 첨단 반도체 패키징을 중심으로 2차 전지용 소재와 AI 반도체 칩을 생산하는 중견기업이다. 임직원 2000명이 한 해 매출 4000억~5000억원을 올린다. 이병구 회장은 재작년 '경영은 관계다'라는 책을 펴냈다. "직원들이 회사에서 노래 부르고 독서하고 감사 편지를 쓰게 하는 게 지속 성장의 비결"이라고 그는 말한다.

―'수퍼스타!'라고 인사하고 감사 편지를 나누는 문화도 인상적입니다.

"감사 그 자체가 굉장한 힘을 가진 동사(動詞)인 셈입니다. 우리를 움직이죠. 반도체 장비에 '감사합니다' 써 붙이기만 해도 고장률이 뚝 떨어지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믿기 어려운 일인데요.

"저희는 5년 전 시작했는데 포항제철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해군도 진해함에서 함포를 향해 '감사합니다'라고 자주 말했더니 기동사격훈련에서 10발 중 7발이 명중하는 일이 벌어졌지요."

―처음엔 직원들도 긴가민가했을 텐데요.

"그래서 양파 실험부터 했어요. 모든 출입구에 양파 6개를 물컵에 담아 제각각 '고마워' '짜증 나' 등을 써 붙여 놓고 뿌리의 발육 상태를 관찰했습니다. '고마워' 양파 발육 상태가 아주 좋았고 '짜증 나' 양파는 말라죽기 직전까지 갔어요. 감사하는 마음이 어떤 에너지를 내는지 확인했지요."

―말[言]의 힘이군요.

"우리 회사는 말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마음이 긍정적인 상태라야 누굴 도와주고 싶고 시너지도 생겨요. '수퍼스타!'는 나를 낮추며 상대가 내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보는 인사말이에요. 명령은 일하는 사람을 어떤 박스 안에 가두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은 나이나 경험이 많다고 임원이 모두 보고받고 결정하는 시대가 아녜요. 저희는 아랫사람에게 '보고해' 대신 '공유해주세요'라고 말합니다. '회사의 언어'가 실적과 직결된다고 믿지요."

―화를 내면 어떻게 되나요.

"성내는 사람은 기분이 풀릴지 모르지만 들은 사람은 그 상처가 하루 종일 또는 며칠 가지요. 결과적으로 성과를 방해해요."

―노조는 없나요?

"없습니다. 저희는 매출과 이익에 따라 자기한테 얼마가 돌아오는지 딱 정해져 있어요. 30%는 종업원 보너스, 30%는 주주 배당, 40%는 회사 몫이죠."
 
[Why] 매일 아침 40분… 음악으로 임직원 '샤워'시키는 회장님

"인생도 3% 바닷물처럼"

바닷물과 민물에서 각각 거둬들이는 수확량은 하늘과 땅 차이다. 바닷물은 염도 약 3%의 소금물. 이 회장은 "하루 24시간 중에 3%에 해당하는 40여분을 투자하면 민물 같은 인생이 바닷물처럼 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조업은 시간이 돈입니다. 2000명이 매일 합창과 감사 편지 등에 쓰는 시간을 생산에 투자하는 게 더 이득 아닐까요.

"일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절대로 마이너스가 아닙니다. 생산성에서 몇 배의 효과가 있어요."

―합창과 감사 시간을 더 늘리면 생산성이 더 좋아질까요.

"바닷물 염도를 높이면 과연 수확량이 늘어날까요? 생활 습관으로 만들자는 뜻이지, 무턱대고 많이 한다고 좋은 건 아닙니다."

―회사명은 무슨 뜻인가요.

"히브리어로 '영원'을 뜻합니다. 보통 회사의 수명이 20~30년이에요. 30년 넘기 참 어렵고 해내면 잘 안 없어집니다. 그렇게 불러주면 장수기업이 될 거라고 믿었어요."

―위기도 있었겠지요.

"10년에 한 번씩 오는 것 같습니다. 사업성이 크다 싶어 설비투자를 했는데 엄청난 손해를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회사문을 닫을 만큼 휘청거리다 보니 새 길이 나옵디다. 그때 시작한 게 반도체였어요. 경기 불황이나 시대 흐름은 외부적인 조건에 불과하고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겁니다. 하지만 사람이 없으면 기업도 없기에, 사람 사이의 관계가 가장 중요해요."

―올해 네패스는 사람 뇌를 모방한 '뉴로모픽 칩'을 개발해 양산하기 시작했습니다.

"현관 조명에 있는 모션센서가 사람이 가면 켜지고 가만히 있으면 꺼지잖아요. 거기에 저희 AI칩을 붙이면 사람인지 아닌지 인식합니다. 강아지일 경우는 안 켜져요. 또 가령 X―레이를 찍으면 의사마다 판독을 잘하기도 하고 못하기도 합니다. 가장 잘 판독하는 의사의 데이터를 AI칩에 입력하면 그 수준으로 파악할 수 있어요. 알파고 뒤에는 엄청나게 많은 서버가 달려 있지만 저희는 작은 AI칩 하나로 해결하는 겁니다."

―음악 경영, 감사 경영에 대해 다른 기업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감동했다며 견학을 옵니다. 대학들이 우리 회사를 연구하기도 해요. 박사 논문도 나왔죠. 음대 졸업하면 일자리가 별로 없는데 '음악 경영'은 그들에게 취업 기회를 줍니다."

이 회사에는 '감사진법(感謝進法)'이라는 복무신조가 있다. 임직원이 아침마다 '예상치 않 은 업무가 생겼을 때 감사하자'를 비롯해 8계명을 복창한다. 좀 북한다운 풍경 아닌가. 이 회장은 "우리는 자신을 위해, 하루를 기쁘게 보내기 위해 다짐하고 북한은 한 사람(김정은)에게 보여주려는 것이니 완전히 다르다"며 웃었다. 마침 옆 회의실에서 회의가 시작되고 있었다.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을 합창하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0/20/201710200224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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